구약 설교/출애굽기 설교

출애굽기 3:1~6, 끝까지 내려놓게 하시는 부르심, 모세를 부르시는 여호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skch712 2024. 5. 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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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14(주 우리 하나님)

 

(출 3:1-6, 개정)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경제 10위 안에 드는 경제 강국이 되었습니다. 잘살다 보니까 하나님 없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넘치는 축복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신앙의 회복이 절실히 필요한 때에 살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신앙회복의 지침이 되는 말씀으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낮추시고, 철저히 내려놓게 하셨을 때 부르셨습니다.

 

* 본문 1말씀에서,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아멘. 본문 1절 말씀은 모세가 광야에서의 40년간 삶을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애굽의 왕자도 아닌 평범한 목자였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40년간 애굽의 왕자로 누렸던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볼품없는 평범한 목자로 풀이 있는 곳을 향하여 양 떼를 몰고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모세는 양 떼와 함께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 본문 2~3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가운데에 임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볼품없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임하셨을까요? 그것은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고난 중에 처해있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말씀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떨기나무에 불꽃이 임했는데도 떨기나무는 타거나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불같은 (고난) 속에도 하나님의 (권능)이 내재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고난이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을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볼품없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소멸하지 않습니다. 볼품없는 떨기나무도 가치 있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마른 막대기와 같은 모세를 가시나무 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꽃과 같은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실 때 우리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나는 마른 막대기와 같고, 볼품없는 가시나무 같더라도 불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모든 상황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본문 4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40세에 부르시지 않고, 80세에 부르셨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자기의 힘과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낮아졌을 때 오히려 높이 들어 쓰십니다. 나의 유한한 능력보다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더 신뢰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해서 택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완전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불완전한 상태를 완전하게 채워 주실 수 있으신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양 떼를 지키던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양 한 마리를 소중히 돌보는 일에 전념하던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본문 4절 하반절 말씀에서, 모세야, 모세야라고 하나님께서는 2번씩이나 반복해서 모세를 부르셨을까요? 그것은 모세의 사명을 하나님께서 일깨우길 원하셨던 겁니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입니다. 모세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른 것도 내가 너를 물에서 구원하고 건져냈듯이 모세 너도 죄의 물결 가운데 안주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야 한다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모세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불러서 분명한 사명 의식을 고취 시켰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했습니다.

 

분명 우리도 하나님께서 모세처럼 부르셨던 그때가 있었을 겁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은 성령의 불로 우리 가운데 뜨겁게 임했던 그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았던 왕자였을 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잘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이 없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본문 5 말씀에서, 떨기나무에 불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을 벗는 것은 당시 종이나 노예는 신을 신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주인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라는 의미합니다. 신을 벗는 것은 내 모든 것을 내려놓음과 같습니다. 곧 내 힘대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명령의 순종하는 힘으로 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을 벗는 것은 회개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겼듯이 자기 스스로 지은 자범죄에 대한 회개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두 발로 죄짓는 자리로 갔던 더러운 죄의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에는 내가 살아왔던 삶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내 생각과 주관을 가지고 마음대로 살아왔던 내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때로는 자기 욕심에 끌려다니면서 어둡고 더러웠던 죄악의 삶도 신고 있는 신발에 남아 있습니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은 내 삶에 반복적으로 익숙해져 버린 신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에게 익숙해져 버린 그 신발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길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에게 익숙해 버린 신발을 벗지 않으면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자기 아집과 고집을 내려놓고, 자신이 지은 자범죄를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8:34, 개정)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아멘.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끝까지 내려놓으라는 우리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조금만 내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다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빈 구멍을 모두 채워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을 완전히 빼면 오히려 물에 뜨게 됩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도 똑같은 원리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살 수 있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신을 벗으라(5)는 명령은 여호수아에게도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여리고성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5:15, 개정)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아멘.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자기 신발을 벗고,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순종하겠다고 결단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원수의 세력을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의 약속을 믿고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면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최고의 감사를 올려 드리면서 주님만을 높여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삽니다.

둘째로, 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때문에 날마다 기도하는 삶을 삽니다.

셋째로, 지금까지 지나온 죄의 발자취를 벗어 버리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과 등진 삶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삶을 살아갑니다.

 

네 신을 벗으라! (맨발)로 가라! 네가 가진 힘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길을 가라고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 부르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묶인 옛사람을 벗어 던지고, 의의 길로 순종하며 따르겠노라고 결단해야만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의 신을 벗고 주님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6말씀에서,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아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과거의 역사책에만 기록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금 모세의 하나님으로 임하셨습니다. 또한 지금현재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하나님, 곧 나의 하나님으로 함께 하십니다. 이 부르심은 현재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 6절 하반절 말씀에,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처음 하나님의 임재를 모세가 경험합니다. 가장 약했을 때 가장 볼품없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애굽의 왕자로 잘 나갈 때, 부요하고, 힘 있고, 권력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가장 초라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만나 주셨습니다. 나를 의지할 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을 만나는 원리를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의 치부를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고, 다 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치부를 사람들에게 감출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감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솔직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치부, 우리의 죄악을 모두 끝까지 다 내려놓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겸손한 예배자로, 주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자로, 죄의 신발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의 부르심에 모세처럼 순종함으로 능력 있게 쓰임 받는 복된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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