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장(주의 피로 이룬 샘물)
(요 19:23-25, 개정)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실 때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 앞에서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눠 가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속옷도 나눠 가지는데 다윗이 쓴 시편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군인들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속옷을 제비 뽑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이 죽어가는 십자가에 현장에서 철저히 그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로마 군인들이 조롱하며 제비 뽑는 것을 내버려 두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죽어가는 현장에서 제비 뽑혔다고 즐거워하며 웃는 로마 군인의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사도 요한의 아픔은 컸습니다. 아픔 가운데도 요한은 이미 예정된 시편 22편 18절의 예언을 상기했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아멘. 이미 다윗이 쓴 시편을 통해 피도 눈물도 없는 로마 군인들이 행할 일을 그대로 예언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하나님은 구원자 메시아에게 일어날 일들을 이미 알려 주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혹하게 죽으셔야 했던 것도 로마 군인들이 인정머리 없이 군것도 모두 하나님의 계획에 한 부분이었습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은 원수들은 쾌재를 부르며 이기고 승리했다고 외쳤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큰 그림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본문 24절에서, 속옷을 제비 뽑았다는 것은 벌거벗은 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봤던 어머니 마리아와 여인들과 사도 요한은 가슴 아파하며 쓰디쓴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본문 25절에서,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아멘.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어머니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주변에는 제자들은 없고 온통 마리아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마리아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마리아’ 이름의 어원은 ‘미리암’에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미리암’과 ‘마라’는 같은 ‘어근’입니다. 지금 십자가 주변에 여러 명의 ‘마리아’가 쓴 눈물을 흘리며 가장 아프고 슬픈 상태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십자가 사건은 마치 출애굽기 15장 23-26절에서, 하나님께서 지목한 ‘한 나무’를 ‘마라’의 쓴 물에 던졌을 때 쓴 물이 달게 되었던 사건과 흡사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쓴 눈물을 흘리고 있던 마리아 이름을 가진 여인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보고 기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5절에서, ‘한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 합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서,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신 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아멘. ‘한 나무’만이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아멘.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목하신 ‘한 나무’가 바로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 나무’입니다. 쓰디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킨 것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출애굽기 15장에서 ‘마라’의 쓴 물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쓰디쓴 눈물을 흘리던 마리아가 주변에 많았던 것도 하나님의 큰 구원 그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 군인들이 바라보는 십자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차지하려는 제비뽑기의 십자가였습니다. 여러 명의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아파하는 쓴 눈물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올바른 십자가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쓰디쓴 죄인을 치료하는 ‘한 나무 십자가’입니다. 올바른 십자가를 바라보는 태도는 죄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쓴 눈물로 회개할 때 ‘한 나무 십자가’가 죄인을 단물로 바꾸십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십자가는 쓰고 상한 심령을 달고 깨끗하게 치료하는 능력의 십자가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는 쓴 것들을 ‘한 나무 십자가’를 의지하여 단물의 회복을 경험하는 복된 한날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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