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요한복음 설교

요한복음 19장 26-27절, 더디게 갈 수밖에 없었던 부활의 증인 요한, 마리아를 봉양한 요한

skch712 2024. 8. 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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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사랑하는 주님 앞에)
 

(요 19:26-27, 개정)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중학교 때 제 별명이 “양반”이었습니다. 제가 행동이 얼마나 느렸는지 모릅니다. 반면에 본문의 주인공인 사도 요한의 별명은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막 3:17).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은 불같은 성격대로 예수님께서 부르시니까 앞뒤 따지지 않고, 아주 급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버지 세베대와 품꾼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막 1:19-20). 그런 요한이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흠뻑 빠져들면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또 다른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26절 상반절에서,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아멘.
 
불같은 사도 요한이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아이들을 키울 때 부모 말씀을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자녀가 더 사랑스럽습니다. 유독 사도 요한은 자신 스스로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언급했던 것은 분명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따랐기에 예수님이 요한을 더 사랑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변모하셨을 때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던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예수님이 붙잡혔던 밤에도 요한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붙잡혀서 심문받았던 대제사장의 뜰에서도 그가 있었습니다(요 18:15-16).
 
요한이 예전처럼 불같은 성격이 남아 있었다면 예수님을 구출하는 작전을 펼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야 한다는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결단했던 겁니다. 요한이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제자훈련”을 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했기에 예수님께서 특별하게 사랑하시는 제자로 바뀌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면서 죽어가실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으나 요한은 도망가지 않고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 곁을 지켰습니다. 본문 26절에서,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앞날을 부탁했습니다. 본문 27절에서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아멘.
 
이때부터 요한은 마리아를 봉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은 마리아를 잠시 돌봐 드렸을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마리아를 봉양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20살이 안 돼서 결혼하고, 첫아기를 가집니다. 그러기에 마리아가 20살이 안 되어서 예수님을 낳았다고 가정한다면 마리아의 나이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90세 정도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40년간 요한이 마리아를 봉양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요한의 나이가 20대 초반으로부터 백발이 성성할 60세 환갑이 넘어서까지 그가 한 일은 마리아를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부모도 아닌 한 여인을 자신의 일생을 바쳐서 자기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는 남동생이 4이나 있었고, 여동생들도 있었습니다(마 13:55-56). 따지고 보면 마리아를 돌보는 것은 요한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마리아가 낳은 자식들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요한은 아버지를 버릴 정도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무려 40년간이나 마리아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황금기를 보낸 것으로 볼 때 사도 요한이 온순한 순종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요한이 극진히 마리아를 모시면서 들려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요한과 라이벌이었던 베드로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여기저기서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요한의 마음은 참으로 힘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여기저기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예수님의 핵심 3인방 제자에 들지 못했던 나머지 제자들도 예수님의 명령대로 목숨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단지 노인의 수발을 들고 있으니,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더구나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이라는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서 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수많은 교회를 세웠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남들은 주님을 위하여 부활의 증인으로 크게 사역하는데,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다른 사도들은 열심히 부활의 복음을 전하며 사역해 가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회의가 들었을 겁니다. 그러함에도 요한은 예수님이 부탁하신 말씀대로 마리아 돌보는 일을 끝까지 책임졌습니다.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너무 심해져서 멀리 에베소로 떠났고, 그곳에서도 마리아를 모시면서 돌봐 드렸고, 마리아는 결국 에베소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요한은 40여 년간을 하루도 빠짐없이, 쉬지 않고, 주님의 말씀대로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아버지 세배대를 버려두고, 사역하겠다고 집 나갔던 요한의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누구보다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간 인물이었습니다. 제자들 중 누군가는 마리아를 돌봐 드려야 했습니다. 요한이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실 때 제자들은 도망쳤지만, 요한만 예수님 곁을 지켰습니다. 누구보다도 요한은 예수님을 사랑했고,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친밀했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애제자였습니다.
 
다른 제자들과 달리 요한은 철저히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사도였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보고 요한이 제자들과 물고기 잡으러 갔던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반해서 면목 없어서 예수님을 피하려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면 요한은 십자가 곁을 지켰기 때문에 예수님을 피할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물고기를 잡아서 마리아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를 회복시키시고 사명을 고취 시키셨던 요한복음 21장의 말씀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요한이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처럼 요한은 예수님을 깊이 사랑했고, 예수님도 요한을 깊이 사랑했기에 마리아를 부탁할 수 있었던 겁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더디게 갈 수밖에 없었던 사도 요한의 생애는 오히려 초대교회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라는 잘못된 교리를 요한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신앙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균형 있게 다뤘습니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1,2,3서와 요한계시록을 통해 위기에 처한 초대교회에 아주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보이는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냐는 그의 가르침에는 순종의 영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눈에 보이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묵묵히 사랑으로 모실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부모를 사랑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부모이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증인은 사도 요한처럼 눈에 보이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서로 사랑하며 섬길 때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도 요한처럼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참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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