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장(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욘 1:9-10, 개정)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요나는 하나님 앞에서 멀리 도망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배 안에 있는 요나의 뒤를 쫓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바다 폭풍의 원인을 찾고자 배에 탄 사람들은 제비를 뽑기 시작했고 그 뽑힌 당사자가 요나였습니다. 요나에게 제비에 뽑힌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이방인들이 물었습니다.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임했으며, 생업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느 민족에 속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방인들의 다섯 가지 질문들은 요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날카로운 질문들이었습니다.
* 입술의 신앙으로 그친 요나의 대답
이 물음에 대한 요나의 대답은 본문 9절에서,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아멘. 요나는 자기가 히브리 사람이고,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답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다를 육지같이 건넜던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했던 히브리 사람이라는 대답처럼 보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면 요나는 굉장히 당당하게 회개하고 있습니다. 굽히거나, 겸손하거나 자신의 죄 때문에 미안해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요나의 고백은 진정한 회개의 고백이라기보다는 입술로만 하는 회개였기 때문입니다. 지은 죄에 대해 진정한 참회 없이 죄를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입술로만 하는 고백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앞서 선원들의 관심은 재앙의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신이 여호와를 섬긴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요나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밝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재앙이 일어나게 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답변이 있어야 죄 용서를 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나는 단지 자기가 누구인지만 초점을 맞추고 재앙의 직접적인 원인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기 죄를 용서해 달라는 고백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시작된 회개의 시작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거기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본문 10절 상반절에서,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풍랑이 일어난 이유가 자기가 하나님을 피해 도망쳤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고백은 진정한 회개로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더 진솔하고 깊이 있는 회개로 이끄시기 위해 요나에게 다른 사건을 준비하셨습니다.
이방 선원들은 요나만 대답할 수 있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본문 10절 하반절에서,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이방 선원들이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요나의 가슴 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자기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을 쳐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대로 순종하지 않았기에 요나는 선원들의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원들의 질문은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의 죄를 저질렀을 때 하나님의 질문과 똑같은 질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실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아담에 묻습니다. (창 3:11, 개정)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멘. 이때 아담과 하와의 대답은 회개하지 않고 회피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아담은 하와 때문이라고 대답했고, 하와는 뱀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아담과 하와가 회개했다면 하나님은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주셨을 겁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등진 선지자 요나는 마음은 돌이키지 않고 완고했습니다.
이방 선원들이 요나에게 던진 질문은 순종하지 않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게 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3번 부인했던 베드로도 받았던 질문입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조차도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했습니다. 로마서 7장 15절에서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속으로는 올바른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원하지 않는 짓, 내가 미워하는 짓만 저지르고 있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도 이방 선원들의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죄 된 본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죄 된 본성은 하나님을 등지고 거역하게 만듭니다. 그러기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죄 된 본성을 못 박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아멘.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가야 살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십자가 앞에 서지 못하면 언제든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만 비난받으면 상관없겠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가서 진실하게 하나님께 돌이키는 회개를 통해 풍성한 은혜로 가득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