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장(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욘 2:2, 개정)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며 가장 밑 바닥이었던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도했을 때 요나는 소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고난의 한 가운데서 요나가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나가 언약의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요나서 2장 1절 말씀을 보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다른 명칭들로 표현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그대로 부를 수 없어서 유대인들은 ‘하 쉠’이라는 ‘그 이름’이라고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칭송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라는 단어는 약속의 하나님을 강조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요나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와 ‘여호와’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요나가 기억하고 있는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 속에 살아갈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으로 세상과 구별되어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을 알리시려고 했습니다. 또 다윗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의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시 말해 죄인을 대속해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불순종한 요나는 하나님 앞에서 감히 얼굴도 들 수 없는 자격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요나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수 있었던 근거는 약속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때 하나님의 약속들이 이해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받아들였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당신의 언약 안에 들어온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고 내치지 않습니다. 아무리 요나처럼 불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저항하고 평행선을 긋고 내려가다가 인생의 밑바닥에 처했을지라도 내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등 돌리고 있다가도 언약을 떠올리고 그 언약을 다시 붙잡기만 하면 다시 그 사람에게 찾아가셔서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요나는 구원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본문 2절에서, ‘스올의 뱃속’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스올’이란, 문자적인 의미로 지옥의 뜻이 있지만 무덤이나 죽음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스올의 뱃속이라는 것은 거의 죽은 상태,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거의 죽은 것과 같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실제로 요나 2장 1절에서 ‘기도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파랄’입니다. ‘파랄’은 동사의 미완료 형태로서 기도를 지속한다는 의미입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답답하고 힘든 고난의 상황에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3일 동안 죽은 것과 다름없이 모든 기력이 다할 때까지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절에서, ‘고난으로 말미암아 기도할 때도 대답하셨고,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을 때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순간에 응답하실 것을 확신하며 기도했고,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에서도 기도를 들어 주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기에 응답받을 것을 확실히 믿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요나처럼 우리도 결단해야 합니다.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계속 기도하는 모습이 있었기에 요나는 삶의 전환점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처럼 끝까지 내려가지 마시고, 우리에게 은혜 주시고, 긍휼을 베푸실 때 사랑의 하나님 품으로 안기시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하신 언약 안에서 두 팔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한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서도 똑같이 두 팔 벌리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먼저 우리가 주님 품에 안겨서 아직도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지 않는 불신자들을 사랑의 예수님 품으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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