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요나 설교

요나 4장 3-4절, 요나의 한계2, 요나의 성냄, 하나님의 응답

skch712 2024. 9. 1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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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주 없이 살 수 없네)

 

(4:3-4, 개정)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요나의 성냄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요나는 하나님께 성을 냈습니다. 요나 뜻대로 되지 않자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본문 3에서,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이렇게 요나는 죽음을 담보로 극단을 향해 자기 고집을 표현했습니다.

 

본문 3에서 드러난 요나의 속 마음을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물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저 원수들이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고 부흥을 경험하는 것을 더는 지켜보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차라리 제가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라는 표현과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친구들과 놀다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 너랑 안 놀라!그런데 조금 성숙해지고 나이가 들면 하나님 제가 죽는 게 낫겠습니다.로 바뀝니다.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보지 않고 자기 속에 상한 감정만 분출하며 하나님께 따졌던 겁니다.

 

그런데 요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능력있게 사역했던 엘리야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던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했을 때 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거짓 선지자들을 무찌르고 승리하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함에도 이세벨 여왕이 자기를 끝까지 좇아와 죽이겠다고 위협했을 때 엘리야의 마음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 광야로 도망가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상 19:4, 개정)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이렇게 엘리야도 요나처럼 죽여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와 요나의 죽여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마음 아프고 지친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셨습니다. 요나 42에서, 요나가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와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애가 크시다는 고백처럼 요나를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우리가 극단으로 가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으로 붙잡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응답

요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속에 있는 불편한 마음만 하나님께 토로합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요나에게 또 찾아가셨습니다. 본문 4에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본문 4 말씀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렇게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요나야, 네가 성내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오히려 성을 내고 분노해야 한다면 내가 분노해야 하지 않겠냐? 화내고 심판할 나는 참고 기다리지 않느냐? 나는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 정도로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면 이젠 돌이켜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사람이 상처가 깊게 나면 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 상처에서 잘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상처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단번에 해결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찾아가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 그렇습니다. 제가 성내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굴복했다면 모든 문제가 끝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와 한계로 인해 요나는 자신의 한계에 갇혀 영적 부흥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과 대치된 세상이 추구하는 초막을 짓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처럼 우리도 때로는 뿌리 깊게 박힌 상처 때문에 한계에 부딪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과 평행선을 긋고 대치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거울삼아 나만의 하나님이 아닌 만민의 하나님으로 믿을 때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헤아리게 됩니다.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넓은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섬기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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