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96장(예수님은 누구신가)
(다니엘 2:31-35, 개정)
(31)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1) “신상”
드디어 느부갓네살 왕 앞에 섰던 다니엘은 왕의 꿈을 묘사합니다. 본문 31절에서, 느부갓네살이 본 신상의 특징은 “매우 컸고”, “광채가 매우 찬란했고”, “그 모양이 심히 두려웠다”고 묘사합니다. 세상에 어떤 신상보다도 매우 컸고, 광채도 매우 찬란했고, 그 모양이 무서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던 꿈속에서 느부갓네살이 앞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라고 할지라도 크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앞도 당하고, 매우 찬란한 광채로 우리를 비춰주실 때 우리의 죄 된 본성들이 드러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면 두려워서 떨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 때문에 느부갓네살은 번민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조차도 왕이 보았던 신상을 통하여 현현하셨던 하나님의 광채를 보고 똑같이 두려워했습니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위대하신 하나님, 그 영광의 광채 앞에 서면 그 누구라도 두려워서 떨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우주만물의 주관자요, 통치자요, 심판자요, 만왕의 왕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2~33절에서,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아멘. 하나님께서 직접 느부갓네살 왕과 다니엘에게 보여주신 신상은 한 가지 재료가 아닌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접할 수 없는 독특한 재료로 만들어진 신상이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당시 인간적인 사고를 뛰어넘어서 무엇인가 의미 있게 만들어진 신상을 봤을 때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신상의 재료”
신상에 쓰였던 재료는 모두 5가지였습니다. 그 당시에 금과 은은 보석을 대표하는 광물로써 영광과 존귀를 나타내는 보석이었습니다. 그래서 금과 은은 맨 꼭대기에 있는 통치자를 상징했고, 종교적으로도 대표적인 보석으로 사용됐습니다.
반면에, 놋과 쇠는 금과 은처럼 가치는 없지만 그래도 전쟁에서 적과 싸울 수 있는 무기로 놋과 쇠를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쓰임새 있게 사용됐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진흙은 위의 4가지 광물과 전혀 달랐습니다. 진흙이기 때문에 꽃병이나 그릇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연약하고 한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4가지 광물보다도 진흙은 가치가 매우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신상 발바닥 맨 밑에 가장 약한 진흙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거대한 신상이라고 할지라고 쉽게 부서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섯 가지 신상에 특징을 가만히 살펴보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세상 지향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땅으로 내려가는 묘사는 다분히 세상 지향적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땅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하나님을 멀리하고, 점점 사람들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습성 속에 잔인함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느부갓네살 왕과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준 신상의 특징이었습니다. 세상이 말세가 되면 될수록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당합니다. 요즘 낙태법에 대한 이슈도 어떻습니까? 태아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추구하려는 말세를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3) “돌의 출현”
그런데 무엇보다도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번민하게 했던 것은 마지막으로 나타난 현상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34절에서,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아멘. 하나님의 현현하심 속에서 크고 찬란하고 두려움을 자아냈던 신상이 갑자기 나타난 돌에 의하여 파괴됩니다. 이런 환상을 보고 느부갓네살 왕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두려운 마음도 생겼을 것입니다. 어떻게 금과 은과 놋과 쇠와 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신상이 갑자기 나타난 돌에 의하여 부서질 수 있단 말인가? 혹시 그 신상이 바벨론과 자기 자신을 상징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자신이 세운 위대한 바벨론 왕국을 무너뜨린 그 돌은 도대체 무엇이며 누구란 말인가? 이러한 두려움이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매우 근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35절에서,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아멘. 진흙만 빼놓고 4가지 광물들은 매우 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단해 보였던 “신상”이 바로 “우상”이라고 다니엘이 왕 앞에서 당돌하게 해석합니다. 제아무리 크고 찬란했던 우상이라고 할지라도 인간들이 자기를 위하여 만든 형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손대지 아니한 돌”에 의하여 부서지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상을 무너뜨린 “손대지 아니한 돌”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것이었고, 가치가 없어 보였던 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우상을 부서뜨립니다. 그리고 그 돌은 “태산을 이루었는데,” “온 세계에 가득할”만큼 큰 산을 이루었다고 다니엘은 왕 앞에서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쌓아온 명성들을 바벨탑을 무너뜨리듯이 한순간에 무너뜨리시는 분이십니다. 제아무리 과학과 의학이 발전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이 시대와 느부갓네살의 꿈이 서로 연관성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본문 35절에서, “손대지 아니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초림의 예수님은 그저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어린양처럼 힘없이 죽으셨다면 부활하셨고 다시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큰 능력과 권능으로 악인과 선인을 심판하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오늘 말씀을 거울삼아서 인간적인 우상을 버리고, 멀리하고, 부셔야만 합니다. 오직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은 믿고, 따르면서, 온 세계에 예수 믿는 자들을 많이 세워서 태산을 이루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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