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빌립보서 설교

빌립보서 1장 25-26절, 살든지 죽든지3, 결정, 너희 믿음의 진보, 기쁨

skch712 2024. 10. 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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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1:25-26, 개정)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3. 결정

사도 바울사느냐 죽느냐의 대한 내적 갈등을 극복할 수 있었던 세 번째 단계는 결정이었습니다. 본문 25-26에서,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아멘.

 

본문 25에서, “살 것결정한 바울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하루빨리 주님 품에 안기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복음화의 과업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며 살 것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살 것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는 굴복과 헌신의 표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본문 25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 가고 싶은 개인적인 욕구를 뒤로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먼 빌립보를 찾아가려는 애틋한 마음을 확신찬 말로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바울빌립보 지역으로 가겠다고 결정한 것일까요? 그것은 빌립보교회 성도들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였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신앙을 성장시키는 것이 바울의 기쁨이었습니다. 남아 있는 여생을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믿음 성장을 위해 아낌없이 바쳐야겠다는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빌립보교회 성도들과 그가 전도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과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영적으로 부모와 자녀 관계였습니다. 교회 적으로는 개척자와 성도의 관계였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관계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과 거한다면 그들은 주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26에서,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있음으로 헬라어파루시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썼던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빌립보교회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주님의 재림과 비교했을까요?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헌금을 전했고, 풀려나길 기도했고, 바울 대신 복음 전도의 진보를 이룰 만큼 서로에게 애정이 있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과 바울이 다시 만나 크게 기뻐할 것을 기대하며 파루시아라는 재림의 기쁨과 똑같은 기쁨을 크게 표현했던 겁니다.

 

세계 2차대전 말 한국에서 사역했던 길보른 선교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사역 전에 미국 스파이로 몰려 일본인들에 의해 만주 감옥에서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만주 감옥에서 4년 동안 고생하면서 미국에 있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자녀들은 자유주의적인 대학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자녀들도 기도하며 신앙이 자랐던 겁니다.

 

길보른 부부의 간절한 기도대로 자녀들은 주님께 돌아왔을 뿐 아니라, 길보른 선교사 자녀들은 중국을 위한 선교사가 되기로 서원했습니다. 드디어 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었고 그들의 자녀들도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길보른 선교사 자녀들은 서원한 대로 중국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두 형제는 한국으로 사역지를 바꿨습니다. 에드윌 길보른서울신학대학교 학장이 되었습니다. 동생 엘마 길보른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을 위해 많은 구호물자를 들여왔습니다. 그들의 헌신 덕분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길보른 선교사 부부가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두 아들은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감옥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훈련 시키는 훈련 장소였습니다. 감옥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 혹여나 고난이 있습니까? 그 고난의 현장이 나를 훈련 시키는 훈련 장소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고난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고 굴복하시길 바랍니다. 내 뜻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크게 영광 돌리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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