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장(예수님은 누구신가), 370장(주 안에 있는 나에게)
(빌 4:13, 개정)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놀라운 간증을 했습니다. 본문 1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이 말씀에 중요한 3가지 개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내게
첫 번째 개념은 “내게”라는 표현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에서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자기 자신이 가득한 ‘사울’을 가리킵니다. 예수 믿기 전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바울’의 이름은 ‘작은 자’인데, ‘사울’의 이름은 ‘큰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름을 바꾸기 전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유대인 중에서도 철저한 유대인이었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넣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나 자신만 있는 형식적인 신앙으로 유대인들에게 인정받으려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려 했던 ‘큰 자’ ‘사울’에게 예수님은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을 용서해주시는 큰 은혜를 입고 자기 영광에서 벗어나 주님께 영광 돌리는 ‘작은 자’ ‘바울’로 변화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2.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두 번째 개념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입니다. 자기 능력을 의지했던 ‘큰 자 사울’이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작은 자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영이십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자기 영광만을 구하던 자가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변합니다.
자기 영광만 구하는 인간적인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역사하십니다.
제가 대학생 때 단거리 마라톤 대회에 2번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2번 모두 우승했었습니다. 그런데 2번째 단거리 마라톤 대회 때 어렵게 우승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대회에서 제가 우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젊은 후배들이 저만 잡으면 우승할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저를 졸졸 따랐습니다. 뒤따르던 후배들은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농구 대회를 뛴 후 이어서 마라톤을 뛰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라톤 대회에서 제가 꼭 우승해야만 이유가 있었습니다. 찬양팀 회장으로 마라톤 개인전 우승 상금으로 악기를 사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전에 농구 대회를 뛰었기에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여서 우승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마음속으로 외쳤던 구호가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입니다.’라고 외치면서 중간 지점에서 전력으로 질주했습니다. 한 참 후에 뒤를 돌아보니 2위 그룹과 멀리 떨어져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힘과 체력이 바닥났을 때 ‘여호와는 나의 힘입니다!’라고 외쳐서 하나님이 주신 힘과 능력으로 우승할 수가 있었고, 찬양팀 악기 헌금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주님께 도움을 구하고 외칠 때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내 힘으로 일할 때는 내 능력밖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힘으로 일하면 주님의 무한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내 힘을 빼고 주님의 무한한 힘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내 힘을 빼고 주님의 힘을 의지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알아가면 나는 작아지고 주님이 커집니다. 말씀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연습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의 주인공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는 신부들이 사는 수도원의 요리사에 불과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읽었던 신부들은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성경을 전문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주님의 임재를 잘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로렌스 형제’는 남을 가르치려고 성경을 읽지 않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그곳에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매일 주님을 만나는 삶입니다. 새벽을 깨우며 이 자리에 나온 것도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매일 주안에 있을 때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안에서 성경을 읽다가 ‘도와주라’ 하면 도와주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하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조건 없이 순종할 때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세 번째 개념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입니다. 본문 맨 앞에 “내게”는 ‘내 힘을 의지하던 큰 자 사울’이었을 때였습니다. 반면에 중간 부분의 “내가”는 ‘주님의 힘을 의지하는 작은 자 바울’로 변화된 때입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했던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바울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혀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사셨기 때문에 변화될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변화된 이후 믿음 안에 산다고 말했습니다.
믿음 안에 사는 삶은 말씀을 믿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따르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주님과 동행하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간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에는 단서 조항이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즉 ‘주 안에서’입니다. 주 안에 거했던 바울의 생애를 통해서 나타난 ‘모든 것’을 3가지로 요약해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모든 것’은 깨끗하고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마귀는 세상의 것들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죄의 유혹은 주님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죄를 이기고 거룩한 삶 깨끗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변화되기 전에는 인생의 목적이 나 자신에게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나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죽어가는 영혼을 향해 관심과 사랑을 갖고 계십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세상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섬기는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야만 합니다. (고전 10:31-33, 개정)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아멘.
세 번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생활의 능력입니다. 새 생명을 얻는 우리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다 보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됩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이유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버는 이유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써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한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되는 삶으로 무게 중심을 옮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인도해주시고 축복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고후 4:7). 바울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오직 내 안에 예수님만 사시길 바랍니다.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람을 살리는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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