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장(지금까지 지내온 것)
(룻 1:8-10, 개정)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1. 여호와의 선대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작별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며느리들을 축복해주시기를 기원했습니다(8절). 사실 며느리들은 남편들이 죽었기에 법적으로 더 이상 나오미 곁에 머물며 봉양할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시집 식구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나오미를 봉양하며 사랑으로 선대했던 겁니다. 오르바와 룻은 시어머니를 선대하기 위하여 고국인 모압을 떠나는 것조차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나오미가 고향 땅으로 가는 노상에서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8b)고 했을 때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혼도 거부하며 시어머니를 돌보겠다고 진정한 ‘헤세드’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의 선대를 했습니다. 오르바와 룻의 선대에 나오미도 화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했습니다. 이 말에서 나오미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신앙을 확실히 표현했습니다.
2. 여호와의 안식
본문 9절 상반절에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기서 ‘위로’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로’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메누아’입니다. ‘메누아’는 ‘평안함, 쉼, 안식, 휴식, 위로’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위로’라는 단어는 ‘안식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히브리어 원문에 더 가깝습니다. 룻기 3장 1절에서는 제대로 번역되었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아멘. 룻기 3장 1절에서는 ‘안식할 곳’이라고 잘 번역했습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좋은 남편을 만나면 안식할 수 있기도 합니다. 반면에 나쁜 남편을 만나면 안식할 수 없습니다. 나오미가 좋은 의도로 오르바와 룻이 잘 되기를 원했지만, 진정한 안식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본문 9절에서, 나오미가 헤어짐의 입맞춤을 하자 오르바와 룻은 소리 높여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문 10절에서,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아멘. 나오미 모습 속에서 발견한 좋은 신앙을 본받고자 한 것인지 아니면 정 때문인지 그녀들은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습니다.
3. 여호와의 보상
오르바와 룻은 나오미와 죽은 아들들에게 충성과 사랑을 바치며 선대했습니다. 사람을 선대할 때 여호와께서 갚아주시는 보상이 따른다는 성경적인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 8절 하반절에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한다”고 나오미는 오르바와 룻을 축복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오르바와 룻이 시어미니와 죽은 남편들을 충성스럽게 사랑으로 선대 했기에 하나님께서도 그대로 갚아주신다는 원리입니다.
사람들을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선대할 때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사람들을 선대할 때 하나님은 그 선대를 하나님께 한 것이라고 간주하고 기쁘게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최후 심판 때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을 ‘양’으로 비유하며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5:34-36, 개정)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아멘.
이렇게 사람에게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선대할 때 예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다고 말씀셨습니다. 사람들을 섬기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부모와 성도와 이웃 간에 친절하게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선대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배격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타주의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희생하셔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타적인 자비와 긍휼과 사랑의 선대를 가정과 교회와 이웃들에게 나누시길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사랑으로 섬기며 선대하며 이 지역 사회에서 칭찬받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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