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장(십자가를 내가 지고)
(빌 2:8, 개정)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3가지 동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마지막 세 번째 동사가 본문 8절에서, “자기를 낮추시고...”입니다. 자기를 낮춘다는 말은 자기를 겸손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인간이 되신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본문 8절 하반절에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아멘. 예수님은 목숨을 내놓으시기까지 복종하셨고, 철저히 자기를 부정하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아무나 달려 죽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사람에게는 십자가 처형을 금지 시켰습니다. 로마 정치가나 부유한 사람은 십자가 처형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종, 강도, 살인자, 반역자, 흉악범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종과 흉악범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종의 형체’로 태어나셨고, 종으로 사시다가 종들이 처형당하는 십자가에서 종으로 죽임당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처형은 특히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형벌이었습니다. 고통과 수치도 싫어했지만, 무엇보다도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갈 3:13, 개정)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아멘. 이 말씀은 신명기 21장 23절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받은 자”라는 율법 때문에 유대인들은 십자가 처형을 가장 꺼렸던 이유입니다.
십자가 처형은 육신도 죽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저주받은 것이기 때문에 두 번 죽는 이중적인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것을 누구도 원치 않았습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이 십자가 처형을 유대인이었던 예수님은 마다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주의 십자가를 지신 것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저주받아야 했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때 모든 죄가 파생됩니다. 결국 죄는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인간의 온갖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죄의 대가를 치르는 저주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저주는 지옥 형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저주와 지옥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 대신 저주의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태어나자마자 웁니다. 젖을 달라고 웁니다. 동생이 생기면 동생을 꼬집고 때립니다. 왜냐면 생존 경쟁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서로 경쟁합니다. 또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합니다. 이처럼 생존 경쟁하면서 몸부림치지만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죽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기 위해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과 다시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하시려고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역사 가운데 성육신하셔서 죄인을 살리는 위대한 역사를 기원전과 후로 나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무식함이 유식함으로 바뀌었습니다. 무식하고 야만적인 유럽이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가자 유식하고 고상한 나라로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학교와 병원이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노예와 여성들이 해방되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나라는 노예와 여인들에 대한 학대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여자를 거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처음 조선에 들어왔을 때 제일 먼저 병원과 학교를 세웠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가면 온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저주의 십자가를 우리 대신 지시고 죽임을 담당하셨기에 우리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저주의 십자가를 지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 23:34, 개정)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아멘.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은 로마 병정과 유대인들과 그밖에 모든 죄인을 지칭하는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저들이라고 하는 무지한 죄인들이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아도 예수님은 그 저주를 죄인들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에게 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저주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셨기에 마지막까지 죄인들에게 저주를 쏟아붓지 않고 자신에게 저주를 돌리는 사죄를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마음입니다. 자신에게 큰 상처를 주고 못 박은 죄인에게 저주를 쏟아붓지 않고, 자신에게 저주를 돌리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