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요한일서 설교

요한일서 1장 1절, 생명의 말씀, 듣고, 눈으로 보고,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

skch712 2021. 11. 1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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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요일 1:1, 개정)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사도요한은 생명의 말씀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2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첫 번째 이유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1:3, 개정)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아멘. 사도 요한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도 (1:16, 개정)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아멘.

 

이렇게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거치지 않고 창조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신 생명의 주인이시다! 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고 싶었던 겁니다.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 생명을 선물로 주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영이 떠났기에 영적인 생명이 없습니다. 싱싱한 화초 잎사귀를 떼어내면 떼어낸 그 잎사귀가 잠시 잠깐은 파릇하지만 결국 시들어 말라비틀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분리는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 가운데 이 세상을 갈팡질팡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영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는 영~원이 나에게도 영~원으로 바뀌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1:18, 개정)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아멘.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셔서 영적인 새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에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아멘.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에도 과정이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는 4가지 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10:17, 개정)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아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고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 때마다 반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듣게 되니까 어떻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진다는 것을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를 사모해야만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예수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시는 것을 보았고, 장님이 눈을 뜨게 되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모습을 보았고, 베고픈 자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현장도 봤습니다.

 

우리교회에 새가족이 오면 누구를 보고 배울까요? 예수님을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장로님과 권사님과 집사님을 보고 배운다는 것입니다. 모범적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닮아갈 때 예수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자세히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사귈 때 겉모습만 보고 사귀면 낭패를 보게 됩니다. 자세히 살펴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듣고, 행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예수님을 보면 볼수록 매료되었습니다. 그분은 거룩하고 성결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랑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분은 죄인과 약자의 편에 서서 섬기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을 극복하지 못하고 신음하는 죄인들을 위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자세히 예수님을 보게 되면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고 계신 예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 번째 단계는, “손으로 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10번이나 제자들에게 찾아가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절한 고통과 신음 속에서 절규하실 때 사도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도망갔습니다. 제자들은 실패와 배반으로 얼룩졌던 자들이기 때문에 먼저 가서 예수님의 손을 붙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여러 번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의 연약함을 사랑의 손으로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실 때 그때 우리가 가장 연약할 때입니다. 우리는 내가 예수님의 손을 붙잡겠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실망과 좌절과 실패로 낙심 가운데에 있는 내 손을 잡아 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두 손을 내밀어서 예수님의 손을 꼭 붙잡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의 손을 꼭 잡을 때 그때 비로소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하필이면 도마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20:25, 개정)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이렇게 반응하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다시 찾아가셔서 의심하는 도마를 만나주셨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27-28, 개정)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아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도마의 고백은 나의 주님이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이 고백은 시몬 베드로(16:16, 개정)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의 그 고백보다도 더 위대한 고백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양손에 선명한 못 자국을 만져보니까 나 때문에 아파하셨던 손, 나 때문에 고통당하셨던 손, 그 사랑의 손을 만지고 나서야 비로소 ~원하신 예수님을 향하여 나의 사랑에 주인이십니다.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아니 그 고백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매순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눈으로 봐야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고 묵상해야 합니다. 지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은혜의 손길을 내밀 때 거절치 마시고, 그 사랑의 손을 꼭 붙잡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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